[인쇄술의 기원] 인쇄술 이전의 기록방식


문자가 발명되어 의사를 전달하는 수단으로 활용하게 되자 이를 기록으로 남기는 방식이 필요해졌다. 사회의 발전에 따라 기록 또한 보다 대량으로 할 수 있는 방법과 오래도록 보존하는 방법이 요구되었다. 이러한 필요에 따라 인쇄술이 생겨나게 되었지만, 문자가 오랜 과정을 거쳐 형성된 것처럼 인쇄술 또한 다양한 방법이 시도되고 많은 시일이 걸린 이후에야 비로소 빛을 보게 되었다.
 
인쇄술이 발명되기 이전에 기록하고 의사를 전달하는 방식으로는 압인법과 날인법, 탁인법 등이 있었다. 그러나 이들 방법은 인쇄술을 싹트게 하는 근원이 되었을 뿐 진정한 의미의 인쇄술은 7세기경에 발생한 목판 인쇄술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압인법(押印法)은 원통(圓筒)이나 인형(印形) 같은 재료에 문자나 그림을 새기고 이를 점토판 위에 굴리거나 눌러서 그 새긴 자국을 만들어 내는 방식이다. 즉, 나무나 금석 등의 재료를 이용하여 만든 둥근 통에 글자나 기호를 새긴 다음 점토판 위에 올려놓고 압력을 가하면서 굴려 원압식(圓壓式)으로 찍기도 했고, 수정이나 옥돌 등에 새겨 평압식(平壓式)으로 찍어내기도 했다.
 
이러한 방법은 잉크와 종이 대신에 점토판을 이용하고 있어 원시적이지만 기록과 의사를 전달하는 수단에 있어서는 오늘날의 인쇄와 비슷한 성격을 띄고 있다. 이 방법은 기원전 5천년경부터 주로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에서 사용하였는데, 이같은 방식으로 기록을 남기거나 물건의 소유를 밝히는 표시로 삼았고, 왕의 칙령이나 법령을 포고할 때도 사용했다. 또한, 당시에는 천문이나 역서, 의학 등의 학문도 이같은 점토판에 의해 전파됐음을 고려한다면, 오늘날 인쇄의 시원(始原)은 압인법이라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날염법(捺染法)은 나무나 금속 등의 판에 그림이나 무늬를 새겨 천에 날염하는 방식이다. 점토판이 아닌 천에 압인하는 방식이어서 완전한 인쇄 영역에는 도달하지 못했지만 압인법보다는 훨씬 진보된 방식이며, 목판 인쇄술을 출현하게 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
 
이 방식은 인도에서 처음 시작되어 페르시아와 중국 등으로 전파됐다. 인도에서는 일찍부터 옷감 짜는 기술이 발달했는데, 여러 가지 그림이나 무늬를 나무나 금속의 판에 새긴 다음, 천에 다양한 색채로 날염하는 방식을 생각해 냈던 것이다. 처음에는 단순히 천에 아름답고 화려한 무늬를 새기는데 사용되었으나, 나중에는 불상을 복제하는 등 오늘날의 인쇄 목적에 근사한 행위로까지 사용되었다. 이 방식은 종이가 발명된 이후에는 천 대신 종이를 사용하였고, 그림이나 무늬 뿐만 아니라 불경과 같은 문자를 찍어내는 방식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탁인법(拓印法)은 비석 등에 조각된 문자나 그림을 복사하는 방법을 말한다. 이는 처음부터 복사를 목적으로 한 것이 아니라 서사 재료로 석면(石面)을 이용한 데서부터 시작된 것이다. 이 방법은 동·서양에서 모두 오래 전부터 사용되었는데, 이집트에서는 기원전 4천년 경에 조각된 석문(石文)이 나왔으며, 중국에서도 주(周)나라의 유물로 알려진 석고문(石鼓文)이 발견되기도 했다. 그러나 이들은 모두 석면에 단순히 글자를 새긴 것에 불과하다.
 
탁인법의 실제는 중국 후한(後漢)시대 때《5경(五經)》을 석면에 조각하여 탁본으로 만들었다는 기록에서 찾을 수 있다. 탁본은 글자를 새긴 석면에 종이를 놓고 물을 축여서 붙게 한 다음 부드러운 헝겊 등에 먹물을 묻혀 가볍게 두드려서 찍어내는 것이다.
 
이러한 인쇄술 이전의 기록 방식은 어디까지나 인쇄술이 생겨나게 한 연원일 뿐 오늘날 우리가 말하는 인쇄술의 시초는 아니다. 진정한 의미의 인쇄술은 7세기 경에 생겨난 목판 인쇄에 의해서 비로소 비롯되었다. 그러나 위에서 살펴 본 방법들이 인쇄술을 태동하게 한 온상이 되었던 것만은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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